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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흑사병', 인류는 살아남을 준비가 돼 있는가?
작성자
홍기종
작성일
2009-09-29
조회
1046
 

'현대판 흑사병', 인류는 살아남을 준비가 돼 있는가?

[바이러스의 습격] 전염병 시대의 再來

신종플루 사망자가 잇따르고 있다. 언론을 통해서 사망자 카운트가 시작되면서 대중의 공포는 더욱 더 커지고 있다. 이번 신종플루의 치명률은 계절성 독감과 비교했을 때 비슷한 수준이거나 조금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신종플루의 높은 감염성을 염두에 두고 큰 우려를 표명한다. 잇따른 국내 사망자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고위험군은 이미 위험에 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고병원성의 변종이 생길 경우 치명적인 전염병 사태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 정부는 항바이러스제 비축, 백신의 준비 등 의료 대응 체계가 매우 부족해 해 더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시민·사회단체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에 대한 '강제 실시권' 행사가 정부, 국회에서 논의되기도 했으나, 파장은 미미하다. 또 백신을 계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설 확보 등에도 정부가 준비 부족으로 백신 대란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신종플루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프레시안>은 연구 공동체 '건강과대안'과 함께 5회에 걸쳐 신종플루를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황상익 건강과대안 자문위원(서울대 교수)이 전염병의 역사를 염두에 두고 신종플루와 같은 전염병의 도래에 인류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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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 조류독감, 광우병 그리고 돼지독감(신종플루). 지난 몇 해 동안 우리 사회와 전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한 "새로운" 전염병들이다. 공포에 비해서 아직까지 실제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아 다행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이 가운데 프리온에 의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광우병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30여 년 사이에 새로 문제가 된 전염병의 병원체는 대부분 바이러스이다. 가히 바이러스의 시대가 찾아왔다고 할 정도이다.

앞으로도 바이러스는 계속 우리를 위협할 것인가? 바이러스 질병의 시계는 지금 몇 시를 가리키는가? 또 의학은 얼마나 뒤쳐져서 그 바이러스들을 뒤쫓고 있는가?

어느덧 10년이 넘었지만 1997년 4월 7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보건의 날'을 맞아 "전염병 시대 다시 오다―우리 모두 관심을, 우리 모두 대응책을"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각국 정부와 의료인들이 전염병에 진지한 관심을 새롭게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 세계보건기구가 확신에 차서, 당시까지 가장 무서운 바이러스 병이었던 두창(천연두)의 완전 박멸을 선포하면서 나머지 전염병도 머지않아 퇴치할 수 있으리라고 장담한 지 20년이 채 안된 때의 일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전염병의 정체와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전염병을 운명처럼 감수해 왔다. "인류의 역사는 곧 전염병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후반 많은 전염병이 병원성 박테리아(세균)에 의해 생긴다는 점이 확인되고 20세기 들어서는 바이러스, 곰팡이. 리케챠 등도 전염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류는 전염병 퇴치에 자신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미생물 병원설(病原說)'이 확립된 1880년대 이래 여러 항독소와 예방 백신이 개발되고 1940년대부터는 페니실린, 스트렙토마이신 등 항생제들이 생산되면서 전염병은 어렵지 않게 정복될 것으로 낙관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두창이 완전히 퇴치되는 등 전염병이 점차 위세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성과와 낙관을 비웃는 사태가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두창이 박멸되어 가던 무렵부터 C형간염, 에볼라 출혈열, 에이즈를 비롯하여 감염력이 높고 치사율도 높은 30여 가지의 전염병, 주로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들이 새로 발견된 것이다. 거의 1년에 한 개꼴이다.

그리고 이들 새로운 전염병 대부분에 대해 여태 뚜렷한 치료법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예방 백신 또한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함께 말라리아나 결핵 같은 '후진국성 전염병'도 얼마 전부터 선진국에서조차 다시 기승을 부릴 채비를 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의 '전염병 시대의 재래(再來)' 경고와 바이러스성 전염병에 대한 관심 촉구는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흔한 병은 인플루엔자 등 상기도감염증일 것이다. 인플루엔자 한 가지만 하더라도 보통 일생 동안 몇 차례씩은 앓는다. 무서운 합병증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인플루엔자 자체는 대체로 사망률이 그리 높은 병은 아니다. 그러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돌연변이를 잘 일으키고 또 쉽게 감염되는 특성 때문에 이환률이 매우 높아 노동 손실을 가장 많이 가져 오는 병이다. 몸이 아파 결석이나 결근을 하는 경우 가장 빈번한 원인이 바로 인플루엔자이다.

많은 의학자가 인플루엔자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머지않아 올지 모른다면서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할 것을 강조하여 왔다. 20세기에 몇 차례 있었던 팬데믹이 언젠가는 다시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제1차 세계 대전 말과 그 직후인 1918~19년 사이에 전 세계를 휩쓸면서 20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았던 이른바 에스파냐독감보다 더 무서운 유행이 닥칠지 모른다고 염려하는 의학자도 있다. 앞으로 1918년의 팬데믹보다 더 끔찍한 것이 나타날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질병에 대항할 수 있는 사회 구조가 무너지거나 약화될 때 병원체가 더욱 극성을 부린다는 사실이다.

예전부터 있던 여러 바이러스성 전염병이 (두창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우리를 위협하고 있거니와, 더욱 두려운 것은 최근 들어 새로운 바이러스성 전염병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또 그것이 우리의 '문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1969년 나이지리아 라사의 기독교 선교병원에서 시작된 라사 출혈열, 1976년 수단 남부에서 폭발적으로 발생한 에볼라 출혈열이 바이러스 전문가와 의사들을 놀라게 했지만 다행히도 아프리카 이외 지역에서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새로운 바이러스 전염병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누구도 에이즈를 빼놓지 않을 것이다. 감염자와 환자 수의 기하급수적인 증가, 끔찍한 환자 모습, 높은 사망률, 여전히 저렴하고 확실한 치료법이 없는 점, 국가와 사회의 완전한 파멸을 가져올 가능성 등 에이즈는 21세기에도 인류를 가장 위협하는 질병이다. 14세기 중반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일거에 몰살시킨 흑사병에 비유하여 '현대판 흑사병'이라고 부르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우리는 전통적인 전염병의 역사와 새로운 병에 대한 경험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끄집어낼 수 있다. 우선 문명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인간의 생활권이 확대되면서 바이러스성 전염병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지구촌이 하루 생활권화되어 가는 오늘날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이다.

또 무분별한 개발이 끔찍한 전염병의 만연을 가져온다는 서실을 역사는 가르쳐 준다. 자본의 탐욕이 가축의 식생활마저 바꾸어 놓음으로써 광우병을 만들어낸 것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끔찍한 예이다.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 광우병만큼 '역설적으로' 인류에게 고마운 질병은 여태 없었다. 하지만 광우병에서 문명사적 경고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파멸일 뿐이다.

정말로 과거와 같은 전염병의 시대가 다시 올지, 또 바이러스가 인류 최대의 적이 되는 날이 올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핵전쟁 등으로 세계질서가 완전히 붕괴되기 전에는 14세기의 흑사병 대유행이나 그보다 더 끔찍했던 아메리카 원주민의 몰살과 같은 전 인류적인 전염병 사태가 벌어질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세계적 규모는 아니더라도 한 나라와 사회가 그와 비슷한 피해를 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소련의 해체 이후 그 지역에 나타난 전염병 창궐은 그러한 가능성을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내전에 휩싸인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사정도 그러한 점을 잘 보여 준다.

전염병의 대규모 유행이 생길 경우 그것은 우리가 상대적으로 그 특성도 잘 알고 대처해 본 경험이 더 많은 세균성 질환이 아니라 바이러스성 질병이 될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생태계에 대한 무차별적 개입, 서식지의 확대, 인구의 밀집과 양적·질적 변화, 성적 행태의 변화, 식생활의 변화, 새로운 발명품의 사용, 교류의 증대와 신속화 등 현대 문명의 여러 요소는 대규모 전염병의 발생을 촉진하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조건들은 문명화·세계화되면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반면에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전염병에 대한 이해가 축적된 것은 인류를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염병에 대해 경각심을 늦추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과잉반응을 보이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사스 발생 초기 중국 정부의 소홀한 대응과 은폐, 베이징의 혼란상, 그리고 일부 언론의 선정적 보도 태도에서 우리는 반면교사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신대륙의 발견'이 없었더라면 아메리카 원주문명과 원주민들이 절대로 멸망하지 않았으리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1960~70년대의 아프리카 개발 붐이 없었다면 결코 에이즈의 유행이 없었으리라고 단정할 수도 없을 터이다. 하지만 아메리카에 대한 유럽인들의 침략, 아프리카 원시림에 대한 약탈이 각기 비극의 역사를 만들어낸 것은 분명하다.

반문명주의자가 아니라면, 문명과 경제와 과학의 발전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과제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전염병의 역사는 그러한 발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성장만이 진보인 양 여기는 많은 인간들에게 점점 더 큰 목소리로 묻고 있다.

 

[프레시안] 황상익 건강과대안 자문위원·서울대 교수